공기업·공무원은 ‘한파’ 예고…기업체 채용증가 미미
본격적인 상반기 취업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는 어느 때보다 혼란스럽다. 친 기업적 성향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얼어붙은 채용시장도 트일 것이라는 의견과 미국 경기침체 여파로 국내 취업시장은 더욱 움츠러들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
전통적으로 상반기 채용규모는 하반기의 평균 3분의 1 수준으로 작다. 보통 기업들의 한 해 영업 성적표가 3월 이후 발표되므로 연초부터 선뜻 채용규모를 밝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때문에 구직자들도 상반기 취업시장을 피하는 형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반기에 꼼꼼히 구직정보를 찾다보면 의외로 입사 문턱이 하반기보다 낮다고 조언한다.
오영민 연세대 취업진로지원팀 컨설턴트는 “산술적으로 상반기에 공채규모가 작지만 경쟁률은 오히려 낮은 경향을 보인다. 조금 뽑는다고 졸업을 연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상반기부터 꼼꼼히 구직정보를 찾아 지원하다보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예상 채용규모는 조사 업체마다 차이를 보인다.
전국경제인협회가 최근 매출액 기준 4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08년 채용계획’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 286곳 중 신규채용을 확정한 기업은 161곳(56.3%)에 그쳤다. 채용규모는 2만4765명으로 지난해보다 6.3% 감소했다.
이보다 앞서 구직정보 업체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선 약 2만8500명으로 지난해보다 1.2% 증가에 그쳤다. 업종별로 보면 전기·전자가 4974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금융(4454명) △석유·화학·가스(3544명) △조선·중공업(2596명) △제조 및 기타(2496명) △건설(2292명) △정보통신(2005명) △자동차(1903명) 등의 순이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올해 채용규모는 예년 수준이거나 이보다 작아질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외국어 능통자 우대
상대적으로 대기업들은 새 정부 기조에 맞춰 채용규모를 소폭 키우려는 움직임이다. 리크루팅 업체 잡코리아가 최근 국내 주요 13개 그룹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채용전망’ 결과에 따르면 올 예상 채용규모는 지난해(1만3232명)보다 11.5% 증가한 1만4760명이 될 것으로 파악됐다. 채용규모를 결정짓지 못한 삼성그룹과 LG전자는 이 조사에서 빠졌다.
채용시장의 큰손인 삼성그룹과 LG전자는 아직 상반기 구체적인 채용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대규모 인원 축소는 없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삼성그룹과 LG그룹의 채용규모는 각각 6750, 3000여명이었다. 두 그룹 합쳐서 1만명에 가까운 인력이 채용됐다. 다만 현재 삼성그룹은 특검 때문에 지난해보다 적은 인원을 뽑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LG그룹은 주요 계열사인 LG전자와 화학 등의 채용규모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LG CNS(400여명), LG상사(160명), LG생명과학(100명), LG데이콤(100명)에서 신규인력을 뽑을 계획이다.
이 두 기업 다음으로는 한화그룹의 공격적인 신규채용이 눈길을 끈다. 올해 채용규모는 지난해(2300여명)보다 30.4% 증가한 3000여명을 충원할 계획이다. 신년 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글로벌 투자와 채용을 적극 확대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 이 중 상반기(4~5월)에 1500여명을 뽑을 예정이다.
강호균 한화그룹 홍보부장은 “올해 글로벌 경영에 역점을 두고 있는 만큼 외국어 분야에 역량 있는 인재를 적극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300여명을 뽑은 SK그룹은 올해 이보다 조금 더 많은 인력을 뽑을 예정이다. 상반기 채용은 미정이며 하반기는 9~10월경 이뤄질 전망이다.
동부그룹도 소폭 증가가 기대된다. 지난해(910명)에 비해 약간 늘어난 1000여명의 대졸 신규인력을 모을 예정이다. 상반기 350명(4월경), 하반기 650명(9~10월경)이 잡혀있다.
지난해 850여명을 뽑은 두산그룹은 올해 이보다 늘어난 1000여명 안팎을 뽑을 방침이다.
하반기에 집중적으로 채용하는 GS그룹도 올해 지난해 570명보다 80여명 늘어난 650명을 채용한다고 밝혔다.
김화수 잡코리아 사장은 “올해는 글로벌 사업 확장을 밝힌 기업들이 많다보니 구직자들은 영어면접에 대비해 외국어 능력을 키우는 데 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기업·공무원
대규모 인원 감축 불가피
‘신이 내린 직장’으로 부러움을 받던 공기업은 올해 ‘취업 한파’가 불 전망이다. 새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 움직임에 따라 기존 인력마저 줄어드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취업 포털업체인 인크루트가 최근 49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2008년 채용계획을 묻는 조사에서 채용계획을 확정한 기업(36개사)들의 채용규모는 2370명으로 지난해 3048명보다 22.2%가 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영화,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되는 한국전력공사, 주택공사, 토지공사, 코레일, 인천국제공항공사,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은 신입사원 채용이 불투명한 상태다. 채용을 축소하거나 채용 시기를 하반기로 미뤘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에서 분리된 한국동서발전의 오범준 인사교육팀 차장은 “최근 공기업 인사 실무자 모임에 나갔더니 대부분 올해는 꼭 필요한 인력만 뽑겠다고 말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발전소 채용규모는 발전소 건설 여부와 정부의 정원 승인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올해는 건설 계획이 따로 없고 새 정부가 작은 조직을 표방하기 때문에 세 자릿수 이상 뽑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국동서발전은 하반기에 20명 내외로 뽑을 예정이다.
공무원 채용시장도 마찬가지. 최근 중앙인사위원회가 밝힌 ‘2008년 국가 공무원 충원계획에 따르면 올해 국가직 행정·기술·외무공무원 채용규모는 4868명으로 지난해 6486명보다 24.9%나 줄어들 예정이다.
황선길 잡코리아 헤드헌팅 사업본부장은 “상반기에는 정부 교체기간이 포함돼 있고 정부 조직과 공기업 조직의 구조 변경이 예상되기 때문에 채용공고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반기를 보고 장기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외국계
상반기 수시채용 노려볼만
올해 외국계 채용규모는 지난해보다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인크루트가 외국계 기업 30개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해 채용규모는 1894명으로 지난해 2189명보다 13.5%나 줄어들 전망이다.
외국계는 주로 소규모 수시채용이 많다. 채용을 밝힌 20개 기업 중에서 절반인 50%가 수시모집을 하겠다고 밝혔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올 한 해 수시로만 총 300명을 뽑을 예정이다. 한국HP는 지난해와 같은 120여명을 채용할 것을 밝혔다. 인턴십을 필수로 거치는 로레알코리아는 상·하반기를 통해 총 40여명을 뽑는다는 방침이다. 한국얀센도 5월과 11월에 50여명을 뽑는다.
허광영 스카우트 선임컨설턴트는 “외국계 기업의 경우 상반기에 미리 인턴 제도를 통해 우수 인재를 선점하는 전략을 많이 쓰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에 관심 있는 구직자라면 상반기 취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8% 감소, 4880명 채용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색된 금융시장과 달리 금융권 채용은 소폭 감소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인크루트가 금융업종 37개 기업을 대상으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2개사(86.5%)가 채용에 나설 뜻을 밝혔다. 채용규모는 4880명 수준으로 지난해 5308명에 비해 8.1%로 감소한 수치지만 2005년과 비교할 때 20.6% 늘어난 수치다.
안현희 잡코리아 컨설팅사업본부 이사는 “요즘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어딜 가나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처우가 월등히 좋은 금융권을 가고자 하는 지원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
인원 미충원율 20%
경기가 불황을 겪을수록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은 인력 채용과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HSBC가 최근 서울과 부산에 위치한 연간 매출액 3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의 86%는 향후 6개월간 신규 채용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중소기업들은 인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노동부가 서울지역 상용근로자 5인 이상 민간 사업체 1048곳을 대상으로 ‘노동력수요동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구인 인원은 24만1028명인 데 비해 채용된 인원은 19만9459명에 그쳐 17.2%의 미충원율을 기록했다.
또한 300인 이상 사업체의 미충원율은 20%(8726명)로 나와 대기업과 달리 인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눈높이만 낮추면 충분히 취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황선길 본부장은 “멀리 있다는 이유로, 혹은 지명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원율이 현격히 낮은 유망한 중소기업이 도처에 있다”며 “인터넷 취업 사이트를 방문해서 중소기업의 기업정보를 충실히 살펴보면 대기업보다 안정적이고 경쟁력을 갖춘 곳을 발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인터뷰 / 박홍석 금호아시아나 전략경영본부 경영관리부문 상무 】
◆ 윤리성 갖춘 인재 원합니다
= Q> 상반기 대규모 인력 채용에 나선 이유.
그룹이 양적·질적 성장을 하게 된 만큼 안정된 사업기반을 다질 수 있는 우수한 인력에 대한 수요가 더욱 커졌다. 성장을 한 만큼 고용창출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Q> 금호아시아나만의 특징이라면.
심층면접, 집단토의, 역량면접, 인성면접 등 다면 평가를 통해 인재를 선발한다. 그 가운데 한자 시험을 보는 것은 다른 기업에는 없는 금호아시아나그룹만의 독특한 채용 방법이다. 우리나라가 한자 문화권임에도 한자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룹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등이 중국에 기반을 갖고 있는 것도 한자 시험을 실시하는 이유다.
Q> 신입사원 채용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점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우선 윤리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의 윤리성은 갈수록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은 곧 사람인데 구성원이 윤리적이지 못하면 기업 또한 윤리적일 수 없다. 그리고 일할 때나 개인 사생활에서나 적극적이고 부지런하며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을 선호한다.
Q> 취업 준비생에게 한마디 조언한다면.
취업시장에도 양극화 현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취업이 어렵다고 그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을 게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끊임없이 찾아내서 보완할 수 있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또 취업을 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일을 더 효과적으로, 더 창의적으로, 더 멋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실행해야 한다.
[김병수 기자 / 김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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