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난 돈, 길을 묻다
재테크 환절기 포트폴리오 점검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치인 장중 1370선으로 튀어 올랐던 4월16일. 강남 '사모님' A씨는 지난해 초 들어간 해외펀드 중 1000만원을 환매 신청했다. 이 돈으로 국내펀드로 갈아탈 계획. 그녀는 "회복속도가 느린 해외펀드가 올라오길 기다리기보단 보다 상승이 빠른 국내펀드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 국민은행이 연 5.7%의 후순위채 판매를 시작한 4월14일. 단, 하루 동안에만 2940억원이란 뭉칫돈이 몰려들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당초 1조원 한도로 4월 말까지 판매할 예정이었으나 판매가 조기 종료될 것 같다"고 전했다.
돈이 돈다. 한동안 코스피 1000~1200선에 갇혀있던 증시는 1200선을 뚫자 단숨에 1300선에 안착했다. 시장에서는 "증시가 너무 빨리 끓고 있다"는 경고와 "단기 조정 후 1500선까지 간다"는 낙관론이 엇갈린다. 여하튼 마냥 대기하고 있던 자금이 서서히 움직인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황.
과연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마침내 꿈틀되는 '돈의 갈 길'은 어디일까? 또 서서히 돈이 풀리면서 몰고 올 인플레이션이란 적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안전자산이 더 위험하다?
사랑받는 재테크 수단은 '때'에 따라 달라진다.
취업ㆍ경력관리 포털 스카우트와 공모전 포털 씽굿이 지난 2월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가장 선호수단을 하는 재테크를 묻는 설문에 대한 결과는 어땠을까? 답을 예측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터. 예금과 적금(24.3%)이 당당히 재테크 선호도 1위를 차지했다.
이번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지난 2003년 선호 재테크 수단 1위는 부동산, 2007년 1위는 펀드(43.5%)가 각각 영예를 안았다.
특이할 만한 것은 인기 재테크 수단과 수익률이 곧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예금과 적금이 인기 정상을 차지한 지난 2월은 '기준금리 2%'란 금리인하 폭탄을 맞은 시점이다.
이에 대해 오성진 현대증권 WM컨설팅센터 센터장은 "초저리금리시대엔 안전자산도 위험자산(?)"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시장이 어려워 한동안 안전자산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났지만, 물가상승률을 커버하지 못하는 시점에서 안전자산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풀어놓은 막대한 돈이 이제 시장의 해빙 무드를 타고 슬슬 나오면서 인플레이션이란 이름으로 엄습할 태세다.
4월16일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가격정보에 따르면 노지감자(수미종) 상품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한달 전에 비해 115%나 올랐다. 실제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에서 감자는 100g당 558원, 감자 1개가 1000원이 넘는 '금(金)자'로 둔갑한 것이다.
이러한 저금리와 인플레이션의 공포로 "자산이 투자 상품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김도현 삼성증권 자산배분 전략파트 연구위원은 "모든 상품의 가치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된다면 유일하게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바로 은퇴자금 같은 자산의 현재 가치"라며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심리가 패닉상태에서 벗어나 진정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지금이 불경기가 자산에 미친 영향을 평가하고 새롭게 적절한 대응방안을 수립할 수 있는 최선의 시기"라고 했다.
◆'지키기'에서 '조화'로 포트폴리오 조정
그렇다면 과연 돈이 풀리기 시작한 현 시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자산배분 전략은 무엇일까?
김도현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일단은 지키고 본다"는 전략에서 한걸음 나아가 "투자자산과 안전자산을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조화의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실제 군대와 연결하면 보다 이해가 쉽다. 김도현 연구위원은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해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독일군의 전략에서 '조화의 전략'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의 통념과 달리 2차 대전 초반 유럽을 석권했던 독일군의 장비와 무장은 그들에게 격멸 당했던 연합군에 비해 크게 우월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군의 무기가 적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지는 않을지언정, 그들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치해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는가를 알았다.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한세대 전의 전술로 독일인을 몰아낼 수 있다고 과신하고 있을 때, 그들은 기갑과 공군력이 돌파의 중심에 서고 보병, 포병, 특수전 병력이 일괄적으로 지원에 나서는 '전격적'이라는 무시무시한 전략을 준비했던 것. 즉 독일인은 병과별로 맡아야 할 임무를 엄격이 구별하고, 분산된 각 병과의 힘은 다른 병과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게 절묘하게 통합했다.
이와 같이 가장 효율적으로 분산된 힘을 강력하게 사용했던 독일인의 전략은 '표준투자형(위험중립형)' 전략에 연결될 수 있다.
어느 특정 자산에 치우치기보다는 자산별 분산투자효과의 극대화를 통해 높은 기대 수익과 낮은 변동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투자 전략이다.
특히 원자재를 투자 우선 순위로 추천했다. 원유는 대표적인 실물 상품으로 향후 경기 부양을 위한 인프라 건설 과정에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주식도 부분적인 헤지 기능을 갖고 있는 주요 투자대상으로 꼽혔다.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오르면 원재료값도 오르지만 상품의 가격 상승에 따른 기업의 이익 증가로 주식 투자를 통해서도 인플레이션에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신동일 국민은행 압구정PB센터 팀장 역시 국내 주식형펀드 등 국내 주식에 무게를 두는 포트폴리오 전환을 추천했다.
신 팀장은 "기존 브릭스 등 혼합펀드 보다는 국내펀드나 중국 본토에 투자하는 펀드, 브라질 등 개별 국가에 투자하는 펀드가 상승 속도가 더 빠른 편"이라면서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시장 회복에 대비해 지금 서서히 투자 시장에 발을 담글 시기"라고 조언했다.
오성진 센터장의 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가 추천한 투자 대상은 '국내주식> 원유> 중국'의 순이다.
국내 주식의 경우 그동안 가치형 위주의 투자가 이뤄졌다면 "이제는 가치형과 성장형의 균형을 맞춰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실물 투자 대상으로는 '금 → 원유' 이동에 주목하라고 권했다. 시장이 불안할 땐 금이 각광받지만,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원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해외 투자 대상으론 가장 우선 순위로 중국을 지목했다. 오 센터장은 "지금의 위기가 끝나면 이머징 국가들 사이의 차별화가 두드러질 것"이라면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국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리라"고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