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칼럼] 이공계 절름발이 인재 만들지 말라
흔히 한국 경제를 이야기할 때 절름발이 경제라는 표현을 한다. 전자, 통신, 조선, 자동차 등 제조업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지만, 금융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시장에 노출된 제조업은 자율 경쟁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규제가 많은 금융의 경우는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이 미미하다.
한국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은 대부분 응용기술을 바탕으로한 이공계에 집중되어 있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곧 이공계의 경쟁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공계 인재 역시 한국 경제와 닮아 있다. 직무역량은 뛰어나지만 기초 업무역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공계 대학생들은 기초 업무역량 중에서 커뮤니케이션, 그 중에서도 특히 글쓰기 능력이 떨어진다. 한 취업포털에서 기업 인사담당자 728명을 대상으로 신입사원에게 가장 부족한 업무 능력을 조사한 결과 '국어 능력'을 꼽은 응답자(5.6%)가 '외국어 능력'이라고 답한 응답자(5.1%)보다 많았다. 국어 실력 중에서는 '쓰기 말하기 등 표현 능력'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39.7%로 가장 많았다.
실제 취업 현장에서 만나는 이공계 구직자들은 글쓰기에 대한 스트레스가 다른 분야보다 심한 편이다. 항상 숫자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이공계 특성상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생이라면 전공이나 계열에 관계없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인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그 글에는 읽는 이에 대한 배려와 친절함이 배어 있어야 한다. 이는 내가 쓴 글을 남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공계 구직자들이 쓴 자기소개서를 읽다 보면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글들이 꽤 있다.
이공계생들의 빈약한 작문실력은 비합리적인 시스템과 사회적 편견의 산물이다.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글쓰기, 작문은 필수 과목이 아니다. 글쓰기에 자신 없는 이공계생들이 학점을 높이기 위해 작문 수강을 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외국에서는 과학자, 엔지니어라면 글을 잘 쓰는 것이 상식인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글 좀 쓴다고 하면 인문계, 못 쓴다고 하면 이공계를 추천하는 것이 우리네 진로지도 현장의 모습이다. 과학 분야에 고도의 글쓰기 능력이 요구되는 이유는 '어려운 내용을 쉽고 설득력 있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논문이나 설명서를 쓸 때 심사위원이나 사용자를 쉽게 납득시킬 수 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다독다작(多讀多作)을 해야 하지만, 요즘의 대학생들은 문사철(文史哲)과 같은 교양서적보다는 토익과 자격증에 몰두한다. 청년실업이 낳은 기현상이다. 때문에 억지로라도 많이 읽고 쓰게끔 하지 않으면, 균형 잡힌 시각과 사고를 가진 인재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모든 대학의 이공계 커리큘럼에 작문이나 독서토론과 같은 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선정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읽기와 쓰기를 통해 숫자와 데이터, 논리만이 전부가 아니며, 아는 것을 표현하고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야 한다. 더 이상 글쓰기 실력이 나빠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공계 출신들이 푸대접 받지 않기를 바란다.
/안시우 취업포털 스카우트(www.scout.co.kr) 컨설턴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