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대한 새로운 관심
조형래 ㈜스카우트 이사
hrcho@scout.co.kr
병원에서의 하루는 참 길다. 보통의 날보다 일찍 잠들고 보통의 날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난다. 병원에서의 하루는 참으로 길고 지루하다.
올해 70살 생일을 맞이한 어머니께서 갑작기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부신피질기능저하증’이라는 병명조차도 낯선 이 병 앞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마음만 바쁘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 병원에 입원하는 일부터 간병인을 소개받는 일까지 당황스러운 일뿐이다. 특히 아픈 어머니를 남에게 맡기는 일은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다. 일단 1주일만이라도 내가 간병을 하기로 했다. 그 다음은? 그 때 알아보도록 하자.
병실에는 어머니를 포함해 5명의 환자가 누워 있다. 내분비내과 병동이라서 모두 당뇨 관련 환자들이다.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 옆 작은 간이침대에는 간병인이 한 분씩 앉아 계시다. 나를 빼곤 모두가 가족이 아닌 간병인이다. 맞벌이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부모님의 병수발을 종일 할 수 있는 상황인 가족은 별로 없을 터이니 그다지 낯선 풍경은 아니다.
그렇게 5인실 병실에서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마음에 작은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그것은 바로 ‘직업정신’이라는 말이다. 좁은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는 일이 쉬운 일인가? 자다 말고 일어나 환자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 또 자다가 침대에 실례를 한 환자의 침대 시트를 갈아야 하는 일,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니 본인의 개인 생활은 모두 반납해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1년째 78세의 할머니를 간병한 프로 간병인 아주머니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라서 병실 분위기를 기분 좋게 해준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찡그리는 낯이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환자만큼 힘들겠어요? 아픈 환자들이 기분 상하지 않게 수치심 느끼지 않게 편하게 해드려야죠. 돈만 보고 하는 일이라면 힘들어서 절대로 못 해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남을 돕는다는 봉사정신이 이 일을 하게 하는 버팀목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부끄러움이 앞선다. 나는 내 직업에 대해 이렇게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가? 이렇게 보람을 느끼고 있는가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리고 나는 얼마나 잘 참아내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도 해 본다.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인양 군 것이 너무 철없는 행동이라는 생각도 든다.
직업을 갖는 것, 일을 한다는 것은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을 위한 일이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잘 돌아간다. 나만을 위한 일, 돈만을 위한 일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는 삶은 퍽퍽해지고 거칠어진다.
아픈 환자들의 가족을 대신해 병실에서 환자를 지키는 간병인 아주머니들이 있어야 사무실 내 자리로 돌아와 일할 수 있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힘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직업이다.
일주일 동안의 간병을 마치고 오늘부터 어머니 곁엔 새로운 간병인이 함께 한다. 남이 가족보다 잘 하겠어? 라는 생각을 이젠 안 한다. 그 분들의 직업정신을 믿게 됐으니까.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의 찜찜함이 지금은 조금 홀가분하게 바뀌었다. 마음 편하게 믿고 어머니의 병간호를 부탁하며 나도 누군가에게 믿을 수 있는 직업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가져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