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新甲乙論] 乙을 예찬한다_아직도 甲이 되길 원하십니까?
직장인 77% “甲乙 따라 직업 귀천 나뉜다”, 90% “甲 업무 하고 싶다”
甲이 되고 싶은 이유?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 乙로 성공하긴 어려워…
“을이 꼭 나쁜 직업 아니지만 난 그래도 갑 원해
갑 중의 갑은 공기업… 을 중의 을은 중소기업”
주간조선은 직업시장에서 갑을론이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취업 포털 스카우트(www.scout.co.kr)에 의뢰,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5개 문항을 작성해 지난 11월 16일부터 사흘간에 걸쳐 홈페이지에 배너 형태로 띄워 참여를 유도한 것. 총 응답자는 603명이었고 남자(456명, 75.6%)와 여자(147명, 24.4%)가 약 3 대 1 비율이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만큼 30대(312명, 51.7%)가 가장 많았고 20대(177명, 29,4%)와 40대(63명, 10.4%)가 뒤를 이었다. <그래픽 참조>
‘갑이냐 을이냐에 따라 직업의 귀천이 갈린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77.1%(465명)는 “그렇다”고 응답했다. ‘되도록 갑의 위치에 있는 직장에서 갑의 업무를 맡고 싶다’는 응답은 89.6%(540명)에 달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을이라고 해서 꼭 나쁜 직업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응답자 중에서도 절반은 “그래도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갑을 고르겠다”며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갑의 직업(직무)이 을의 직업(직무)보다 선호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응답은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다. 가장 많은 응답자가 선택한 의견은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는 게 싫어서’(204명, 33.8%)였다. ‘편하고 안정적인 갑의 길을 두고 굳이 을을 자처하는 건 억울하다’(162명, 26.9%)는 의견도 많았다. ‘을도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지만 실제 성공사례는 극소수이므로’(111명, 18.4%) ‘어차피 생계를 위한 거라면 되도록 덜 힘든 쪽을 택하고 싶어서’(84명, 13.9%)란 응답도 꽤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응답자가 생각하는 ‘갑 중의 갑’ ‘을 중의 을’ 직업을 묻는 문항도 있었다. 응답자들이 ‘갑 중의 갑’ 직업으로 가장 많이 꼽은 건 ‘공기업·공사 직원’(195명, 32.3%), ‘공무원’(165명, 27.4%), ‘대기업 직원’(102명, 16.9%) 순이었다. ‘을 중의 을’ 직업으로 영업직을 제치고 ‘중소기업 직원’(180명, 29.9%)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건 다소 의외였다. ‘각종 외판원’(135명, 22.4%)과 ‘텔레마케터’(78명, 12.9%)가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新甲乙論] 乙을 예찬한다_아직도 甲이 되길 원하십니까?
직장인 77% “甲乙 따라 직업 귀천 나뉜다”, 90% “甲 업무 하고 싶다”
甲이 되고 싶은 이유?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 乙로 성공하긴 어려워…
▲ 일러스트 한규하 사전적 의미와 실제로 통용되는 의미 사이의 간극이 상당한 단어가 있다. ‘갑을(甲乙)’도 그중 하나다. 갑을의 사전적 의미는 ‘순서나 우열을 나타낼 때 첫째와 둘째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더 널리 쓰이는 의미는 따로 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甲)과 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입장(乙)’이 그것.
이 말이 유독 직업시장에서 자주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경기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뎌지며 (청년)실업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월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3.2%였다. 전년 동월 대비 0.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실업자는 79만900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만3000명 증가했다. 청년실업률은 7.5%로 전년 동월 대비 0.9%포인트 상승했다. 미국 등에 비하면 증가세가 주춤하다곤 하지만 실업자 수는 매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실업률 증가의 원인을 논할 때 사람들은 흔히 정부정책 미비와 사회구조 왜곡 같은 거대담론을 언급한다.
그러나 문제의 표면을 한 겹만 벗겨내면 얘긴 좀 달라진다. ‘신의 직장’으로 추앙받으며 사람들이 몰리는 일자리가 있는 반면, 일부 업체는 늘 구인난에 시달린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직업엔 확실한 귀천이 있다. 그리고 둘을 가르는 잣대는 단 하나, ‘갑이냐, 을이냐’다. 모두가 갑일 수 없는 세상에서 누구나 갑을 지향하는 세태는 분명 비정상적이다.
갑은 늘 편하고 을은 언제나 불리한 걸까? 한번 갑은 영원한 갑이고 한번 을은 영원한 을일까? 갑에서 을로 자리를 옮기는 건 바보 같은 짓일까? 훗날 인생을 뒤돌아봤을 때 최후의 승자는 갑일까, 아니면 을일까? 주간조선은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갑을론’에 심취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짚었다. ‘갑의 안정’ 대신 ‘을의 불안’을 선택한 이들의 얘길 듣고 전문가로부터 조언도 구했다.
월간지 기자 A(34)씨는 몇 년 전 ‘잡지 영업’에 뛰어든 적이 있다. 당시 A씨가 속해 있던 월간지는 신규독자 확보를 위해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다. 그중 하나가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연간 신규계약 수수료가 5500만원 이상인 보험설계사들의 모임)급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잡지 구독을 권유하는 일이었다. 지속적인 고객관리가 필요한 설계사들이 잡지를 채택하기만 하면 단기간에 판매부수를 높일 수 있었다.
갑을의 풍경
안정된 甲? 乙처럼 뛰어야 사는 허갑(虛甲)도 수두룩
乙이라도? 그나마 乙도 다행, 乙 밑에 병(丙)과 정(丁)
보험업계 쪽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A씨는 무작정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외국계 생명보험사 건물을 찾았다. 여러 지점이 몇 개 층에 걸쳐 입주해 있던 그 건물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훑기로 했다. 그러나 지점장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안내 데스크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사전약속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딱 5분만 내어달라고 사정한 끝에 겨우 대면한 몇몇 지점장의 반응도 시큰둥했다.
그중 한 지점장에겐 그야말로 문전박대를 당했다. “약속하고 왔어요?” “아뇨. 실례가 됐다면 죄송합니다.” “실례할 짓을 왜 해요? 나가요!” 그는 준비해간 말을 한마디도 못 건넨 채 돌아서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는 요즘도 그때 일을 곧잘 떠올린다. 기자 일을 시작한 후 제일 힘들었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얻은 것도 있다. 웬만한 일엔 꿈쩍 않는 ‘맷집’이 생긴 것이다.
홍보대행사 직원 B(28)씨에겐 잊지 못할 추억의 생일사진이 한 장 있다. 사진 속 그는 너무 울어 퉁퉁 부은 눈으로 생일케이크 앞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그날 B씨는 한 마케팅업체 관계자로부터 봉변을 당했다. “병원 홍보 일을 맡았는데 ‘대대행’ 형태였어요. 주대행업체가 있고 그 사이에 저희 회사가 끼어 업무를 진행하는 거였죠.
그런데 업체에선 막무가내로 ‘무조건 내가 필요한 것만 해달라’는 식이었어요. 상황을 설명하려는데 말을 가로막더니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더군요.”
또 다른 고객사의 홍보 담당자는 행사를 진행하며 “다른 기자는 부르지 말고 ○○·□□·△△신문에만 노출되게 하라”는 무리한 주문을 하기도 했다. 특정 매체에만 정보를 제공하는 행위는 ‘괘씸죄’에 해당돼 추후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담당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걸 잘 조율하는 게 대행사가 할 일 아니냐. 무조건 문제 없게 처리하라’며 큰소리를 쳤다. B씨는 “홍보대행업이 을 중의 을이라는데 때론 을 대접도 못 받는 것 같아 서글프다”고 털어놓았다.
구직난과 구인난 사이
금감원 70 대 1… 공무원이면 환경미화원도 ‘OK’
중기 5곳 중 4곳 상반기 채용계획 절반 겨우 채워
지난 11월 9일 행정안전부는 2009년도 7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최종 합격자 591명의 명단을 확정, 발표했다. 올해 7급 공채시험 응시생은 2만8957명. 경쟁률은 49 대 1이었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충북 청주시가 발표한 환경미화요원 공고에선 18명 모집에 233명이 지원해 12.94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원자 중 18명은 대졸자였다. 환경미화요원은 각종 수당을 포함해 3200만원가량의 연봉을 받는 공무원 신분이다.
경쟁이 치열한 정도로 따지면 ‘신(神)의 직장’ 공기업이 단연 으뜸이다. 최근 채용계획을 발표한 금융 관련 공기업의 경우 산업은행이 54 대 1, 한국은행이 60 대 1, 금융감독원이 70 대 1의 경쟁률을 각각 기록했다. 교사의 인기도 식을 줄 모른다. 최근 마감된 2010학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 원서 접수 결과, 375명을 선발하는 서울(장애교사 선발 부문 제외)에서만 1만6419명이 지원, 평균경쟁률이 43.8 대 1에 달했다. 전년도(26.1 대 1)에 비해 1.5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반면 여전히 구인난에 시달리는 업체·업종도 많다.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보험영업이다.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 당시 신학용 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보험설계사 10명 중 6명은 근무 후 1년을 못 채우고 직장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설계사의 13개월차 정착률은 2007년 42%(생명보험·손해보험 합산)에서 1년 만에 39.8%로 하락, 전년 대비 2.2%포인트 감소했다.
중소기업 역시 만성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 8월 잡코리아가 올 상반기 채용을 실시한 중소기업(사원수 300명 미만) 55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56.1%, 309개사)이 “필요한 인력을 제때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응답했다. 인크루트가 실시한 조사에선 “올 상반기 채용에 나선 중소기업 322개사의 채용 예정 인원 2839명 중 실제 채용 인원은 1672명(58.9%)뿐이었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분석과 조언
집에서 왕자·공주로 키워진 젊은이들 갑에 집착
갑에 연연해 걸핏하면 이직… 좋아하는 일 찾아라
“요즘 젊은 친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의 왕자·공주로 대접 받습니다. 그러나 막상 사회에 나와보면 그게 아니거든요. 그 간격을 극복하지 못하는 현상이 갑을론에 집착하는 결과로 구체화되는 거죠.”
조형래 스카우트 이사는 ‘곧죽어도 갑!’을 외치는 젊은이들의 경향 이면엔 핵가족화에서 비롯된 사회문제가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직업정보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직업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급속히 전파되는 현상 역시 직업에 대한 편견을 심어주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최근 들어 을의 직업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대학 광고홍보학과 졸업생들의 진학 경향이다. 신입생 때만 해도 광고홍보 일에 대한 환상을 가진 학생들이 고달픈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며 점차 생각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성적이 우수한 졸업생은 대부분 광고대행사나 홍보대행사 대신 대기업의 마케팅 혹은 홍보 담당자로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조 이사에 따르면 최근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 일명 ‘액티비티(activity) 면접’도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성향을 반영한 트렌드 중 하나다. 액티비티 면접이란 일부러 곤란한 상황들을 연출한 후, 면접 대상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 점수를 매기는 형태의 면접을 일컫는다. 고객을 상대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노(No)’를 외칠 수 없는 서비스업 종사자를 선발할 때 특히 활용 빈도가 높다. 그는 “액티비티 면접을 보는 회사가 늘어난다는 건 곧 그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갑이 한정돼 있는 직업시장, 을을 못 견디는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뭘까. 조 이사는 “직장의 외피를 보지 말고 콘텐츠와 일 자체에 집중하라”고 충고한다. “얼마 전 한 취업준비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기도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었어요. 중견 가구회사 해외영업팀에 합격했는데 초임(2400만원)이 너무 적어 고민이라더군요. 제가 던진 질문은 ‘가구를 좋아하느냐’ 하는 거였습니다. 연봉이나 간판, 근무조건 같은 건 껍데기에 불과하거든요. 정말 일 자체가 즐겁고 재미있다면 다른 어려움은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헤드헌팅 업체 피플스카우트 임정우 대표는 “갑을에 연연해 취업을 무작정 유예하거나 짧은 시간에 여러 직장을 옮겨다니는 행위는 경력관리에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의 이력서를 받아보면 부쩍 ‘퐁당퐁당’ 경력이 눈에 띕니다. 5년차 직장인인데 옮겨다닌 직장만 네다섯 곳에 이르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력은 없느니만 못합니다. 성실하지 못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재취업 시에도 감점 요인이 되죠.”
임 대표는 “편한 직업만 찾는 나약한 젊은이를 키운 건 과잉보호를 일삼는 부모와 무기력한 대학교수들”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대학생이 졸업 후 취업시장에 뛰어들지만 그중 제대로 된 진로지도를 받은 이들은 거의 없어요. 심지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는 일을 버거워하는 친구도 허다하죠. 교수들부터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대충 가르쳐서 내보내면 어떻게든 제 몫을 하겠지’ 하는 안일함부터 버려야 해요.”
‘新갑을론’을 말한다
이젠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는 시대
사회변화 따라 지위 언제든 바뀔 수 있어
사농공상(士農工商, 선비·농부·공장·상인)이란 말이 있다. 봉건시대를 관통했던 계급 관념을 순서대로 나열한 표현이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이 순서가 유효하냐고 묻는다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선 예전 같았으면 상인에 해당했을 비즈니스맨의 위상이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앞서는 게 사실이다.
굳이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사회변화에 따른 갑을의 지위 변화는 어렵잖게 발견된다. 대표적인 게 인터넷 포털이다. 과거 매체 수가 많지 않고 인터넷 환경이 구축되지 않았을 땐 존재감이 미미했던 포털들이 최근 들어 전통적 미디어보다 훨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과거에 ‘딴따라’로 불리며 천대받았던 가수·배우 등 연예인과 연예 매니지먼트업계 역시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예전엔 상상할 수 없었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갑과 을은 철저하게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규정된다. 규모가 한정돼 있으면서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는 어김없이 갑의 위치를 차지했고 문턱이 낮아지며 해당인원이 늘면 점차 을의 위치로 이동해갔다. 그렇게 볼 때 부문을 막론하고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현대사회에서 ‘현재의 갑’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신세다.
사법고시 정원이 늘며 파산 변호사가 속출하고 의사 정원이 늘며 문 닫는 병원이 많아지듯 앞으론 교사도, 공무원도 더 이상 ‘철밥통’일 수 없다. 당장 교원평가제며 개방형 공무원 채용이 논의되고 있지 않은가. 자, 상황이 이런데도 해묵은 갑을론을 고집할 텐가. 선택은 각자에게 달려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