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사표 쓰던' 경험이 내 삶의 밑천
내 인생 최고의 재테크-이직/김석란 스카우트 이사
머니투데이(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꼭 돈이 아니라도 좋다. 평생의 벗인 아내도 좋고, 자기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기부라도 좋다. 또 모진 고생 끝에 정착해 뒤늦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직장이라도 좋다.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자신에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재테크'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내 생애 최고의 투자'에 성공한 사람들의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2001년 초 거목 같던 남편이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 바로 응급실로 옮긴 덕에 이내 건강을 되찾았지만, 이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때 굳은 결심을 했다.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아야겠다."
# 그로부터 6년여가 흐른 지난해 말. 그녀의 책상에는 위풍도 당당하게 '이사'라는 명패가 놓였다. 평사원에서 이사로 '초고속 승진 엘리베이터'를 올라탄 취업포털 스카우트의 김석란(46) 이사의 얘기다.
"요즘엔 고객과 직접 1대 1 상담하는 일이 드물어요. 기업 강의나 프로젝트 진행 등 대외적인 업무가 주가 되었으니까요. 주 업무가 상담에서 관리로 전환된 것이어서 새 업무에 적응하느라 땀 많이 흘리고 있죠."
직함에 걸맞는 새 임무에 어깨가 무겁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녀의 "부담된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겐 그저 "부럽다"는 말을 이끌어 낼 뿐이다.
지금은 숱한 아줌마들의 로망이 되는 자리에 우뚝 선 그녀이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성공의 최대 밑천은 취업시장에서의 숱한 실패의 기록 그 자체였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날마다 사표 쓰는 여자'로 20년 방황
전남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가 서울로 유학 와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에 진학할 때만 해도 세상은 온통 무지개빛이었다.
하지만 막상 서울이란 세계에 올라와보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지방 아가씨의 눈에 비친 화려한 서울 여대생들의 모습은 동질감이 아닌 괴리감ㆍ열등감으로 다가왔다.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대학 4년을 그냥 버텼다는 게 딱 맞는 표현일 거예요."
'아차' 하고 때늦은 후회를 했을 때는 이미 냉혹한 사회에 내던져진 뒤였다. 취업 준비가 제대로 돼 있을 리 만무했다.
1985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의료기기 관련 회사에 들어갔다. 사장 비서 역할이었지만 건축 도면을 그리는 일도 겸했다. "조그만 회사이다 보니 뚜렷한 업무 구분 없이 이일 저일 했죠." 적성에도 안 맞았고 보람도 느낄 수 없었다. " 결국 1년 만에 결혼을 핑계로 그만뒀죠."
하지만 '이대 나온 며느리'를 집안에만 두기엔 아까운 시댁에서는 "능력 있는데 왜 집에서 썪이냐"며 사회생활을 '적극' 밀어줬다.
1988년 여러 일간지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무렵, 시아버지의 소개로 막 탄생한 일간지에 입사했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사회생활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니 '날마다 사표 쓰는 삶'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존심을 상하는 일은 절대 못 참는 성격이라, 치사하고 구차하면 바로 사표를 던졌어요."
결혼 후 첫 직장인 일간지에서 근무 기간은 2년여 남짓. 그나마 그녀의 취업 방랑사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곳이다. 이후에는 3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지역신문, 스포츠신문, 마케팅 전문지 등 조그마한 언론매체 서너곳을 전전했다.
이후 도전한 학습지 영업도 몇달을 넘기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성격 탓이었다. 그러면서도 보험이라는 영업 일에 또 다시 도전했다. 하지만 딱 교육 한달, 영업 한달을 뛰고 나선 영업의 높은 벽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
한때 창업시장도 기웃거렸다. 황해성 선생의 전통병과교육원에서 떡 하는 걸 배웠다. 소위 퓨전 떡을 취급하는 전통 찻집을 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교육을 마친 뒤 생각을 현실로 옮기는 단계에선 이도 포기했다. 때마침 모 잡지사에서 편집부장을 제안하자 그리로 마음이 기울었다. "한마디로 끈기가 없었죠."
그렇게 이일 저일을 들락날락하던 그녀의 방황은 결국 남편으로 인해 마침표를 찍었다. 2000년께 대기업 직원이던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게 된 것. 언제나 꼬박꼬박 들어오던 두둑한 월급봉투가 사라졌다.
게다가 생계를 위해 남편과 통신장비를 취급하는 회사를 차린 뒤에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남편에게 뇌졸중이 발생한 것. 이내 회복은 했지만 상황은 전과 많이 달라졌다.
"더 이상 남편만 믿고 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어요. 예전에는 사표 열심히 던지고 다녔는데, 그럴 수 없겠더라고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 이를 악물었어요."
◆ 다양한 직업경험 밑천, 커리어컨설턴트로 승승장구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진지하게 앞날을 고민하게 되면서 비로소 그녀의 '길'이 눈에 보였다.
"정말 심각하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고민했어요.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그때 한가지 키워드가 보였어요. 전공인 상담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한 다양한 직업 경험. 이것을 합해보니 바로 직업상담이란 길이 나오더군요."
2년여의 진지한 고민 끝에 발견한 '천직'이었다. 그때가 2003년께.
'심리학 전공, 직업 경험 5년 이상 된 분 모십시다'란 취업 공고를 본 뒤 한 경력관리 회사에 덥석 지원했다. 집인 일산에서 당시 교육을 진행하던 분당까지 출퇴근하는 데만 하루 5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새로운 분야이니 우선 진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돈이나 근무 여건은 그 다음이고요."
그 마음가짐 덕분이었을까. 일산에서 분당까지의 출퇴근은 겨우 한달만에 끝이 나고, 본사의 부름을 받았다. 바로 그해에 책임 컨설턴트의 직함도 달았다.
현재의 스카우트로 온 것은 2년 뒤인 2005년. 이후 그녀의 성공엔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2005년 7월 책임 컨설턴트로 온 뒤 4개월 만에 팀장을 달았고, 지난해 봄엔 본부장을 맡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8개월 만에 이사의 자리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20년 가까이 취업시장에서 방황하면서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는 말을 절감했어요. 왜 내 마음에 차는 직장이 없을까. 대학 다닐 때 준비를 잘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수도 없이 했죠. 하지만 돌이켜보면 화(禍)가 복이 된 셈이에요. 숱한 직업경험이 없었다면 이토록 빠른 승진은 없었을 겁니다."
김 이사는 "이론보다 경험에서 나오는 진솔한 직업 얘기가 구직자들을 움직이는 가장 값진 자산"이라고 말한다.
또한 뒤늦게 '물 만난 고기'가 되다보니 하루하루가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를 얘기하는 직급보다 내 일을 찾았다는 게 더 좋다"며 웃는다.
드디어 기나긴 방황의 마침표를 찍은 김 이사. 그녀는 그 방황하던 시간에 축적했던 힘으로 남보다 더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연세대 교육대학원에서 인적자원개발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따냈으며, 지금도 이대 평생교육원에서 비폭력대화를 전공하는 등 관련 이론과 실무에 정통한 리더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직업 관리는 아직도 개척해야 할 분야가 많은 세계에요. 제가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길을 열어야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으니까 더 열심히 뛸 수밖에 없죠."
쓰라린 이직 경험을 밑천으로 '직장인 최고 재테크'라는 직무에서 당당히 성공을 거머쥔 김석란 이사. 과연 나이 마흔에 새롭게 쌓기 시작한 성공 스토리의 꼭지점은 어디일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