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7개 있는데요~"… 그래서 어쩌란 겁니까?
지난해 서울 상위권 대학을 졸업한 J(26)씨는 “‘자격증 중독’에 걸린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근 2년 동안 자격증 7개를 땄다. 시작은 ‘취업이 어려워 자격증을 따면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시장에서 눈에 보이는 스펙이라도 향상시켜 몸값을 높이자는 것.
J씨가 가장 먼저 취득한 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응시한 한자능력검정시험 2급. 그러나 이내 취업에 속속 골인한 지인들 얘기를 듣고는 조바심이 생겼다. J씨는 “학력이나 학점만으로 어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친 김에 한자능력검정시험 1급을 따고 난 뒤 MOUS와 정보처리기사까지 땄다”며 “취업에 연이어 실패하고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아무래도 부족한가’ 하는 생각에 금융 관련 자격증에까지 눈길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금융기업의 업무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증권투자상담사와 선물거래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최근에는 금융자산관리사와 재무위험관리사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대학가의 스펙 인플레는 특히 금융 관련 분야를 지망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번졌다. 금융 증권 자격증 세트라고 불리는 것 외 공인재무분석사나 공인회계사로도 부족해 국제공인회계사 등을 준비하는 구직자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 대학 취업 상담실의 공통된 의견이다.
건국대 취업상담실 관계자는 “기업은 스펙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일 잘하는 사람을 원한다”고 잘라 말했다. 계량화된 수치보다 현장에서 업무능력을 발휘해 수익을 창출할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 업무와 관련 없는 스펙은 필요없다는 기업의 생각과 ‘그래도 혹시’라며 자격증 취득에 매달리는 학생 간의 온도차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구직자들도 자격증을 일부 소수 극성 지원자들의 ‘옵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취득해야 하는 필수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상경 계열 전공자들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공인회계사나 공인재무분석사 자격증 준비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
스펙 인플레의 심리적 동인이 되는 극도의 구직 불안감은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에 따르면 4년제 대졸 구직자(졸업 예정자 포함) 회원 1138명을 대상으로 ‘스펙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85.6%가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평균 자격증 수는 3개에 달했다. 학점이 최상위권인 4.0을 웃도는 201명에게 ‘내년 상반기 취업 안정권에 속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86.0%(173명)가 ‘불안하다’고 답했고, 토익점수가 900점을 넘는 64명 가운데 68.8%(44명)도 스스로 취업 안정권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취업 포털 스카우트가 지난 10월 말 구직자 7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구직자의 80%가 이른바 스펙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스카우트 관계자는 “대학가에서는 ‘스펙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라며 “그러나 기업들은 지원자의 스펙을 활용할 데가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지원자의 스펙 중 업무와 관련 없는 스펙은 필요없다는 것이다.
김재현 기자(madpen@heraldm.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