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빅뱅] 고용 빙하기 취업 지도가 바뀐다
뜨는 직업, 지는 직업
위기 후엔 새로운 미래가 온다
직업시장 빅 트렌드 3
#지난해 12월 취업·경력포털 스카우트는 자사 소속 팀장급 컨설턴트 10명을 대상으로 ‘2008 10대 취업 트렌드’를 조사해 발표했다. 여기엔 △기업, 채용계획 취소 및 축소 △구직 포기자 급증 △감원·구조조정 폭풍 △취업목적 사교육비 지출 증가 △공시족(공무원시험 준비생) 열풍 △2009 상반기 취업경쟁률 더욱 치열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불거진 글로벌 경제 한파가 국내 취업시장에도 혹독하게 불어닥친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해 직업별 ‘현재 전망’과 ‘10년 후 전망’을 비교하는 연구를 했다. 이에 따르면 서비스업 중 10년 후 가장 유망한 직업군은 주방장·바텐더 등 음식서비스 관련직이었다. 현재 전망 5위에서 네 계단이나 뛴 것이다. 반면 현재 전망 2위인 보건·의료 관련직의 10년 후 전망은 4위에 그쳤다. 불과 10년 새 ‘뜨는 직업’과 ‘지는 직업’의 위상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누구나 ‘위기’를 외치는 요즘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힘든 이들은 구직자다. 어딜 가든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는 소식투성이인데, 하물며 ‘좋은 직업’의 기준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요즘 같은 땐 직업 선택의 방향키를 어디로 둬야 하는지조차 막막하다. 이미 한두번 실패를 겪고 새 직장을 찾아 나선 이들의 사정은 더 딱하다. 족집게 도사라도 나타나 “이렇게 준비하라” “이런 직업이 유망하다”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싶은 심정이다.
지난 1월 24일 직업평론가 김준성씨가 주간조선 앞으로 메일을 보내왔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의 직업시장을 진단한 소논문 초안이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구직시장에 망연자실하고 있을 구직자를 위해 논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 요약하고 저자 김씨를 인터뷰했다. 그가 추천한 ‘경제위기 이후에도 거뜬한 직업’ 종사자 3명도 만났다.
‘제2의 도전’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선 지난 2월 초 서울 영등포구에 문을 연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 사무실을 찾았다. 저마다 사연을 지닌 재취업 희망자들의 이야기를 밀착 취재하는 한편, 재취업 시장의 실태를 꼼꼼하게 짚었다. 꽁꽁 얼어붙은 고용시장 공략에 도움이 될 전문가 제안도 함께 담았다.
한국 직업시장이 미국발 금융쇼크로 인한 불황의 영향을 덜 받으려면 약팽소선(若烹小鮮)의 정책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약팽소선이란 노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언급하며 비유한 말로 (작은 생선을 삶을 때 자꾸 뒤척이면 모양이 흐트러져 먹을 게 없는 것처럼) ‘무슨 일이든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게 가장 좋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발 금융쇼크는 한국 직업시장에 큰 도전이다. 한국의 대미금융 의존도가 생각보다 깊고 넓기 때문이다.
한국이 본격적인 고용 스태그플레이션에 접어드는 시기는 올 2분기가 될 것이다. 이후 국내 채용시장에선 다음 세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영업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평가요소가 될 것이다. 둘째, 특정 직업군을 제외하면 높은 보수를 희망하는 인재들은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셋째, (파트타임 경력을 포함한) 업무경험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다. 아울러 장기적 시각으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직업시장의 변화상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장 긴요하고 ‘돈’이 되진 않을지라도 긴 안목으로 준비하면 반드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통용될 직업시장의 새 트렌드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TREND 1. 신(新)규제시대
관치금융 부활… 기업 감사부·심의실 강화될 것
금융시장 모니터링·준법감시인 등 新직업군 부상
최근 40여년간 시장을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는 그 수명을 다했다. 1978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항공규제철폐법에 서명한 후 본격화된 탈(脫)규제의 흐름은 사라지고 관치금융시대가 부활할 전망이다. 과도한 금융자본주의의 폐해는 ‘규제(regulation)’를 새로운 키워드로 채택했다. 이런 변화는 직업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기업마다 감사부의 역할이 커지고 방송국 심의실 기능도 강화될 것이다.
지난해 9월 29일 부시 행정부가 발의한 ‘긴급경제안정법(Emergency Economic Stabilization Act of 2008)’이 미국 하원에서 부결됐다. 월스트리트 금융 투기세력의 잘못을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법안 내용에 대한 여론의 부정적 평가가 작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평론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라디오나 신문, TV 등에 출연해 금융시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금융공학적 시각으로 논평하는 게 이들의 임무다.
시장상황을 분석해 투자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금융시장 행동 모니터링 전문가(financial market activity monitoring specialist), 금융기업에 소속돼 직원들에게 금융거래 관련 법률 위반 가능성을 정기적으로 경고하는 준법감시인(compliance officer) 등도 미국 금융가에서 새롭게 주목 받고 있는 직업군이다. ‘과잉 욕망은 경계하고 탐욕을 억제하자’는 금융시스템의 자정 노력에 따른 결과다.
TREND 2. 아름다움을 소비하라
예술 소비가 국가경제를 좌우하는 시대
미술품 복원기술자·아트펀드 직종 유망
미국발 금융쇼크는 예술소비시장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예술소비가 국가경제를 좌우하는 대표적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오페라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다. 프리미어리그 경기장을 찾는 데 드는 비용 이상을 예술소비에 투자한다.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와 불세출의 밴드 비틀스를 배출한 나라가 영국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 불황기에 예술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은 ‘독창성’이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켜야 한다.
최근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새롭게 부각되는 직업 중 하나가 미술품 복원 기술자다. 르네상스 시기를 전후로 수많은 미술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특성상 기후 등의 영향으로 파손되거나 변질된 미술품을 원래대로 복원하는 일의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탈리아에서뿐 아니라 미술품 등 문화유산의 복원작업은 그 희귀성으로 인해 시간이 흐를수록 각광 받을 전망이다. 비슷한 이유로 미술품을 사고파는 아트펀드 관련 직종의 장래성도 밝다.
1920년대 할리우드의 탄생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스페인이 국가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투우장을 건설한 것처럼 할리우드는 ‘즐거움’을 미래의 주력산업으로 키우려는 미국의 국가적 의지의 산물이었다. 이른바 ‘펀놀러지(Funnology)’의 탄생이었다. 이런 미국의 영화시장 선점 효과는 꽤 컸다. 워너브라더스, 20세기폭스 같은 대형영화사들은 엄청난 인력을 고용하고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세계 영화산업에 ‘미국’이란 브랜드를 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매년 각 대학의 연극영화과 지망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고 해외시장 진출에 성공한 한류스타들이 배출되는 지금 시점에서 한국도 이 분야를 예술경제적 측면에서 발전시키려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자질을 갖춘 연기자가 배출될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 하고, 그에 앞서 걸출한 시나리오 작가부터 육성해야 한다. 한명의 스타, 한편의 작품이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얼마나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는지 생각해보라.
실직대란…재취업지원센터 가보니
심리강좌 듣고 이력서 제출해보고 "다시 시작하자" 주먹 불끈 쥐지만…
기업 구조조정 본격화… 1월 실업급여 신청 사상 최대
지원센터 이용자 작년 대비 30% 증가, 사무실도 늘려
하지만 지난해 봄부터 눈에 띄게 줄기 시작한 매출은 가을이 되자 적자를 면치 못했다고 했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외식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었다. 직원을 한꺼번에 내보냈고, 월세만 세달치가 밀렸다. 아내는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보자”고 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자꾸 자라는 아이들 교육비 때문에 직종을 바꿔볼까 생각하던 차에 과감히 사업을 접었고, 몇 차례의 재취업 실패 끝에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재취업도 만만치 않았다. 음식점을 운영하던 노하우를 살려 관련 업계에 입사하고 싶었지만 짧은 경력과 학력으론 서류 통과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장사가 안 되던 때보다 자꾸 불합격 통보만 받는 지금이 더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아빠 합격했어?”라고 묻는 딸의 질문에 답하기도 민망해 이젠 이력서 냈다는 얘기도 안 한다고 했다. 그는 “업종을 바꿔 다른 창업을 해보면 어떨지 생각 중”이라며 “두달 정도 여기 수업을 들었는데, 아직까지 ‘실패’에 대한 감정 정리가 안 되고 혼란스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검색실에서 뉴스를 검색 중이던 강모(39)씨는 센터에 등록한 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중소기업 영업사원으로 8년간 일하다 지난해 10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일을 그만뒀다. 한 달여를 집에서 쉬다 12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지만 한번도 면접에 가지 못했다. 11전 11패다.
강씨는 “내가 가고 싶은 업종이나 재무 사정이 괜찮을 만한 회사만 골라서 지원을 했기 때문에 자꾸 떨어진 것 같다”며 “앞으로 더 고용 사정이 안 좋아진다고 하니 눈을 확 낮춰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강씨는 ‘혹시 자기소개서에 문제가 있나’ 싶어 매일 저녁 집에 돌아가면 자기소개서 고쳐 쓰는 연습을 한다.
희망은 있다
지원센터 이용객 급증 대비해 정부 예산 2배로
민간업체 포함해 재취업 알선기관 20여곳 활약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는 2004년 노사정위원회에서 이뤄진 ‘일자리 만들기 사회 협약’의 일환으로 설립된 비영리 경력채용 컨설팅 기관이다. 2005년 11월 설립돼 재취업을 원하는 구직자들에게 1 대 1 개별 컨설팅을 비롯해 직업적성검사, 재취업·창업 지원, 심리 안정 강좌 등을 제공한다.
실제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를 찾는 재취업 희망자들은 경기침체 이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센터를 이용한 고객 수는 1211명으로, 2007년 같은 달 이용객 900여명보다 30% 정도 더 늘었다. 센터 이용객 수는 지난해 7월 전까진 600~1000명으로 들쭉날쭉한 모양새를 보였지만, 실물 경제 침체가 시작된 8월 이후부턴 꾸준히 1100~12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양균석 잡서치팀 선임팀장은 “12월엔 프로그램 수용 인원보다 신청자 수가 더 많아 ‘이용 희망 인원이 넘쳐서 1월부터 서비스해 드립니다’라는 공지를 띄우기도 했다”며 “이는 우리 사회에 본격적인 ‘실업 대란’이 찾아왔다는 걸 말해준다”고 말했다. 올해 이 센터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도 대폭 늘어, 지난해 5500여명 수준이던 이용객 수가 올해는 1만4000여명으로 세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재취업지원센터의 업무 확대는 뜨겁게 달아오른 재취업 시장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센터는 지난 2월 4일 약 396㎡(120평) 정도 크기였던 5층 사무실에서 793㎡ 크기의 12층 사무실로 확대 개소했다. 재취업을 원하는 이용객 수가 급증한 만큼 규모도 늘어난 것이다. 정부에서 배정받은 예산도 72억여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다.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를 비롯해 경력자 재취업을 알선하는 기관은 민간 업체까지 합쳐 대략 2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중 일반에 널리 알려진 것은 잡코리아나 스카우트, 인쿠르트 등 대형 취업 사이트 및 중견·대기업 출신 경력자 재취업을 알선하는 외국계 헤드헌팅 업체. 최근엔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노동부 산하 고용지원센터를 비롯해 각 지역별 종합고용지원센터 등 공공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 수도 늘고 있다.
재취업지원센터를 통해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전직(前職)과 재취업한 부문 비중을 비교해보면 ‘노동 수요’가 비교적 많은 직업 트렌드도 읽을 수 있다. 전통적인 ‘주류 직군’이었던 사무직이나 영업·마케팅 분야는 전직 직군과 재취업 직군이 비슷한 비중을 차지하거나 조금 낮았지만, △연구개발·기술·생산 △인터넷·통신기술 △여행·이벤트·서비스 분야는 재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종사 비중이 1~3%가량 더 높아졌다. 노동 수요도 상대적으로 많고, 또 그 분야에 취업을 원하는 이들의 수도 많다는 뜻이다.
재취업 성공하려면
전문가 상담 등 통한 자신감 회복이 우선
과거는 잊고 업무에 맞는 경쟁력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고용 빙하기’ 시대에 재취업 희망자들은 더욱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취업을 원하는 연령대가 대부분 30~50대인 만큼 심리적 좌절감이나 압박감이 청년 구직자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정해영 컨설턴트는 “재취업 희망자들은 가장 활발하게 일할 시기에 고용조정이나 퇴직 등을 겪기 때문에 그만큼 ‘중년의 위기’가 클 수밖에 없다”며 “집에서 인터넷만 하기보단 취업 전문가들을 만나는 등 바깥 생활을 하며 ‘일상성’을 회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 상담을 받거나 구직 전략을 세우는 게 바로 이런 심리 변화의 중요한 극복 과정이라는 것이다.
김익중 제이엠커리어 책임전문위원은 재취업에 걸림돌이 되는 대표적 장애물로 △나이 △일관되지 못한 경력 △낮은 학력 △일천한 외국어 실력 △지나치게 높은 눈높이를 든다. 김 전문위원은 “나이나 학력의 경우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내가 어디서 연봉을 얼마 받았는데…’ 하며 과거 영광만 운운하는 사람들이 열에 한둘은 꼭 있다”며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은 많고 일자리는 점점 줄어드는 만큼 업무에 맞는 ‘일관된 경력’과 ‘직무·업종에 맞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ㅣ재취업 지원기관 |
1.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전국 85곳의 고용지원센터가 있다. 최근 실업급여 수급자가 대폭 증가해 심층상담을 지원하기가 어려울 정도라고는 하나, 그래도 취업상담전문가를 만나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2. 각 지역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취업정보은행이나 취업정보센터도 중요한 지원 기관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서 전문가와 직접 상담할 수 있다. 서울시는 서울일자리플러스센터(job.seoul.go.kr/main.asp)를 운영하고 있으며, 경기도는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intoin.or.kr)에서 취업지원 정보를 찾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 직업 경력이 1년 이상인 퇴직근로자와 과장급 이상 직위로 3~5년 이상 근무한 이들은 한국노총과 경총이 노동부의 후원을 받아 전액 무료로 운영하는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newjob.or.kr)와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projob4050.or.kr)를 이용할 수 있다.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는 개인 구직 고객과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전문적인 컨설팅과 잡매칭(job-matching·일자리 연결)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문 취업지원 컨설팅뿐 아니라 향후 경력관리나 인생설계에 대한 컨설팅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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