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전문직 위상 어떻게 변할까
업무 넘나드는 ‘퓨전 전문직’ 두각
‘士字’ 전문직의 수난
‘변해야 산다’.
과거 합격만 하면 먹고살 수 있었던 전문직 종사자들은 요즘 이 말을 실감한다. 남들에겐 선망받는 직업이지만 생활은 오히려 봉급생활자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 고소득 직종으로 불리던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취업 전문가들에게 이들의 위상과 앞으로 유망할 전문직에 대해서 물어봤다.
의사·변호사 전성시대 계속되나
‘빈익빈 부익부’ 확대
박진석 삼성생명 변호사(38)는 의사 출신이다.
9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4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2007년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의사 출신 변호사가 보험회사로 간 경우는 그가 처음이다. 의료와 법률지식을 두루 갖춘 박 변호사는 복잡하게 얽힌 의료보험소송문제를 중간에서 원활히 해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로봇수술 등 의료기술의 발달로 보험금 산정과 지급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며 “불필요하게 지급되는 보험금으로 전체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을 막고 고객들도 충분히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적정선을 찾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처럼 틈새시장을 찾아 전문성을 키우지 않으면 전문직들도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될 전망이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으로 이 분야의 생존 경쟁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변호사 수는 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법시험 통과자가 약 1000명인 상황에서 로스쿨 변호사들이 배출되는 2012년 이후에는 그 숫자가 1500명 이상으로 불어난다.
조형래 스카우트 이사는 “직업도 수요 공급 원칙에 따라 희소성이 그대로 통용된다. 앞으로 스타급 변호사와 의사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향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법률시장 개방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될 전망이다. 협정이 체결되면 경쟁력 있는 미국 대형 로펌들이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성 연세대 직업평론가는 “국내에도 스포츠, 해양,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시장이 새롭게 열리겠지만 기존 서비스 방법을 답습했다가는 쉽게 도태되고 말 것”이라고 조언했다.
의료시장도 마찬가지. 매년 의료시장에 배출되는 의사 수만도 3000명에 이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의료계 불황으로 개원하는 전문의보다 월급 받는 페이닥터가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다. 지원자 편중현상도 심화된다. 의료사고가 많이 나는 산부인과나 개원하기 힘든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에 지원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김한준 한국고용정보원 직업연구센터장은 “한 달에 수천만원을 버는 의사가 있는 반면 건물임대료조차 내기 어려워 문을 닫는 의사가 나온다”며 “의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빈부 차가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떠오를 전문직은
노령화 관련 직종
향후 새롭게 떠오를 만한 전문직은 어떤 게 있을까. 전문가들은 언더라이터, 항공교통관제사, 외국기업 투자유치 전문가, 정보보안전문가를 비롯해, 보험상품개발자, 경영정보시스템전문가 등을 제시했다. 김한준 센터장은 “경영과 금융, 공공분야, 정보통신과 공학, 의료와 보건 분야, 여가 등과 관련된 전문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많은 요즘, 살펴볼 직업 세계가 의외로 다양하다는 걸 의미한다.
노령화 시대에 발맞춰 의료와 보건 분야에 주목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최효진 HR코리아 사장은 “노화방지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며 “관절염, 골다공증, 치매, 탈모 등 인체의 노화와 관련된 신약개발 전문가가 유망직종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조형래 이사도 이런 차원에서 생의학 엔지니어를 유망 신직종으로 꼽았다. 생물학, 의학, 공학을 결합해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업무를 맡는다. 한 예로 인공장기 전문가 등을 들 수 있다.
경영과 금융 분야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꾸준히 주목받을 수 있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등 대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이들에 따르면 특히 증권이나 보험 관련 전문직이 성장 가능성이 크다.
보험에 들기 전 가입자의 자격을 심사하는 언더라이터,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보험상품개발자(보험계리사), 금융 리스크를 관리하는 금융자산운용가 등이 여기 속한다. 공병호 소장은 “금융 분야 전문직은 대부분 자격증은 기본이고 오랜 업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 진입장벽이 높다”고 말했다.
언더라이터의 경우 하루에 100~200여건의 보험자격을 심사하며 업무 특성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직업이다. 업무강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얘기다. 하지만 연봉은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다는 게 인사 전문가 의견이다. 조형래 이사는 “국외 보험사의 국내 시장 진출 움직임과 국내 보험사들의 국외 진출 등을 볼 때 인력 수요가 올라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밖에 전문가들은 심리치료사, 인체통신 기술 엔지니어, 줄기세포 연구원을 들었다.
이광석 인크루트 사장은 “산업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현대인들이 가진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이를 해결할 심리치료사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문제, 아동문제, 사회부적응자가 증가함에 따라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점차 높아져 활동범위도 늘어날 것이란 게 이 사장 의견이다.
김준성 평론가는 인체통신 기술 엔지니어란 특이한 직업을 제시했다. 그는 “입고 다니는 컴퓨터가 개발되는 요즘 인체를 통한 통신 기술이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체 통신 기술이란 유선이나 무선을 사용하는 기존의 통신 방식과 달리 사람의 몸을 통신망으로 활용한다.
서로 악수를 하면 두 사람이 입고 있는 기기의 무선 랜 설정이 저절로 이뤄지는 식이다. 이 부문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전자통신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
프로페셔널로 성공하려면
1인 기업가로 무장해야
유망직업군에서 활약하기 위해선 일단 의식 변혁이 필요하다. 공병호 소장은 “프로페셔널이란 칭호는 단순히 학위를 따거나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서 얻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CEO 마인드가 필수란 설명이다.
공 소장은 “사회가 인정하는 자격을 얻은 뒤 최소 10년간 노력하며 무형의 장벽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필요한 게 CEO 마인드. 스스로 1인 기업가인 그는 “어떤 조직에 속해 있든 스스로를 잘 경영하는 CEO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즉, 성공한 1인 기업가만이 프로페셔널 자격이 있다는 설명이다.
1인 기업가 마음가짐을 가졌다면 다음 단계는 뭘까. 김한준 센터장은 “각 직업 종사자들이 갖고 있는 학력수준, 전공분야,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사항 등부터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직업정보시스템(know.work.go.kr) 등을 참조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고 유망 자격증에 무조건 도전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심리치료사를 유망하다고 꼽은 이광석 사장은 “자격증 발행기관마다 인증하는 업무 분야가 다르다”고 밝혔다. 임상심리사를 원하면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주관하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단순 상담전문가를 원하면 상담심리학회가 주최하는 시험을 봐야 한다.
심리 관련 컨설턴트는 임상심리사, 상담전문가 등 직종이 나뉘기에 본인 진로에 맞게 자격에 도전해야 한다.
임상심리사는 행동장애, 약물중독 등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한다. 상담전문가는 환자보다는 정상인을 대상으로 보다 덜 심각한 정서나 행동 문제를 다룬다. 말 그대로 카운슬러다.
공병호 소장은 “무작정 유망한 직종만 보고 매달릴 게 아니라 본인 소질에 맞는 직종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사, 변호사 등 분야가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라곤 하지만 일에 흥미를 느껴 꾸준히 혁신하는 사람은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윤규 기자 / 김충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