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학점 인플레’ 道 넘었다
한나라 박영아 의원 239개大 학점 분석
64개 대학은 전교생 2명중 1명이 A학점
“취업만능주의 상아탑 물들여” 비난 여론
학점 신뢰 떨어져 취업사교육 부작용도
전교생이 1만3762명인 지방의 한 대학. 2008년 2학기 학점 분포를 살펴보니 A학점을 받은 학생이 전체의 78.4%인 1만793명이었다. B학점을 받은 학생은 2574명. 전교생 중 395명을 빼고 97.1%가 B학점 이상을 받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 과목에서 A학점을 받고도 장학금을 타지 못한 학생들이 수두룩했다.
취업전선에서 싸울 제자들을 위한 교수와 대학 측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해도 ‘학점 인플레이션’이 이 정도라면 ‘학점 폐지론’이 나올 법하다.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교육과학기술위원회)이 239개 대학의 2008년 전공과목 학점분포를 분석한 결과, 전교생 2명 중 1명 이상이 A학점을 받은 대학이 64곳에 달했다. 10명 중 9명이 B학점 이상인 대학은 10곳이었으며, 10명 중 8명 이상이 B학점 이상인 대학은 90개교에 달했다.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A학점은 대체로 성적순위 30% 이내에 드는 학생들에게 주는데, 이를 어기고 A학점을 남발한 대학은 전체의 87%에 달하는 208곳이었다. 이런 현상은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유명대학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는 학사 규정을 “학과목의 성적 등급은 A는 20∼30%, B는 30∼40%, C 이하는 30∼50%의 비율을 기준으로 성적을 부여한다”라고 명시해 놓고는 이를 전혀 지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박 의원이 서울대에서 2008년 2학기 전공과목 성적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A학점을 받은 학생들이 48%에 달했으며, 특히 법학과의 헌법1과목은 A학점을 받은 학생 비율이 1999년 21%에서 2008년 40%로 두 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카이스트는 47%, 부산대 45%, 포항공대 44%, 한양대 44%, 연세대 43%, 고려대 39%, 성균관대 36%, 서강대 32% 등인 것으로 조사됐다.
학점포기제 등 비용낭비 엄청나
인터넷에서는 실망과 걱정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ID ‘뚜버기’는 “취업만능주의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해야 할 상아탑을 사기와 기만으로 물들게 하고 있다”면서 “학점 인플레이션이 공공연한 상황에서 실익도 없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쁜 학점을 아예 지워버리는 ‘학점포기제도’를 도입하는 대학들이 늘어나면서 이같은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한 대학은 좋은 학점을 받아 취업에 유리하도록 이른바 ‘학점성형’에 나선 학생들 때문에 9999학점을 지워버렸다. 1학점을 따는 데 22만원이라고 할 때 22억원이 낭비된 셈이다.
취업정보업체 스카우트의 조귀열 홍보팀장은 “기업체들이 여러 스펙을 본다지만 명문대생이라도 일단 B학점을 넘지 못하면 아예 서류를 쳐다보지도 않다 보니 이런 현상이 심해지는 것 같다”면서 “가뜩이나 비싼 등록금에 학점포기제 등을 통해 학점관리를 하느라 엄청난 비용을 감수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박 의원은 “학칙을 어겨가며 후한 학점을 주는 것은 학점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의 학업에 관한 열의를 떨어뜨릴 수 있어 우려된다”면서 “학점의 변별력이 떨어지다 보니 기업은 다른 스펙을 요구하게 되고, 학생들은 다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교육비’를 치러야 하는 고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순기자 | 
